영화 창궐 실제 역사 속 소원세자 강림대군 경빈 이조와의 차이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킹덤을 보다가 비슷한 소재 영화인 창궐이 생각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조, 소원세자, 경빈과 주인공은 강림대군과 매칭되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은 누구인지 차이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1. 역사 속 인물들은 누구인가?

극 중 인물을 역사 속 인물들과 비교하자면,

​인조는 이조로 개명되었고,
소현세자는 소원세자로,
주인공(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은 강림대군으로, 소현세자 아내 강빈은 경빈으로,
인조시대 가장 큰 간신으로 꼽히는 김자점은 김자준으로 영화 상에서는 등장
한다.




##### 스포일러 주의 #####
아래 내용에는 영화 결말 등의 내용 전개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


​2. 영화와 실제 역사 속 내용과의 차이점은?

- 인조와 소현세자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어떠한 일을 도모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다. 인조는 9년 만에 청나라로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국한 세자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귀국 축하 연회도, 치하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를 시기 질투 했다. 노골적인 박대의 분위기 속에 소현세자는 병을 얻었고, 결국 귀국한 지 3달도 못 되어 그 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 소현세자의 죽음은 의외로 독살설이 설득력 있고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국가의 공적 역사 기록이라 할수 있는 실록에서까지도 소현세자의 시체가 매우 심하게 검게 변해 있었더라는 이야기를 적어, 소현세자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영화 속 배경 설정인 기근과 역병 창궐은 의외로 비슷하다. 좀비, 야귀의 출현 정도까지는 역시 비현실적이긴 하나 당시 기근이 있기는 했었다. 인조의 사망 또한 야귀화가 되어 청나라 사신 앞에서 죽은 것은 당연히 아니고 소현세자가 죽은 4년 뒤 날씨가 한창 더워져 전염병이 돌던 시기에 학질(말라리아) 증세로 사망한다.


- 소현세자 사후 세자빈인 강빈이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청나라에서 동거동락하며 사이가 좋았던 봉림대군이 영화처럼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절대 아니었다. 인조는 의도적으로 강빈을 박대하다 전복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워 그녀의 궁녀들을 무고하고, 강빈이 그 일로 항의하자 건방지다는 둥 청나라에 있을 때 홍금적의를 지어 입고 난을 모의했다는 둥 각종 누명을 덮어 씌워 사형이 처했다.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들은 죄인의 아들이 되어 어린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에 처해진다.


- 신하들이 극구 반대하고 그녀도 전하의 자식이 아니냐고 이야기하자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실록에서 대놓고 임금이 '개새끼'라고 욕을 한 건 정말 드문 일인 듯 하다. 어쩌면 사관이 '걸러서' 표기한 것 조차 저 정도이고 실제로는 더 심한 욕이었을 수도 있다.
"개새끼 같은 것을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니, 이것이 모욕이 아니고 무엇인가?(狗雛强稱以君上之子, 此非侮辱而何?)" , 1646년(인조 24년) 2월 9일


- 인조가 죽은 뒤 차기 임금이 된 효종인 봉림대군 또한 강빈에 대한 대우가 정말로 험악했다. 강빈 신원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이 일을 꺼내는 놈은 죄다 역적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일례로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어떤 말이라도 다 받아들이고 벌도 내리지 않겠다는 구언의 교지가 내려졌을 때 황해도 감찰사 김홍욱이 강빈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게 다 강빈의 억울한 죽음에 하늘이 노해서 그렇다고 주장하자 완전히 이성을 잃은 효종은 김홍욱을 소환해 곤장을 때려 살해하기도 하였다.


- 하지만 이와 별도로 효종(봉림대군)은 강빈에 대한 강경한 태도와는 별개로 남겨진 강빈의 자식은 최대한 보호하려 노력했다. 당장 즉위하자마자 제주도에서 가까운 함양으로 다시 더 가까운 교동도(강화도)로 유배지를 옮겼주었고 치료와 물자 등 비록 유배 중이지만 최대한 대우해주려고 노력하였다.


- 영화에서 또 다른 주인공인 김자점은 영화에서처럼 인조에게 엄청난 총애를 받았다. 인조가 죽기 전에 "김자점과 이시백은 나와 같이 대하라"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이다. 그러나 봉림대군(효종)이 인조를 뒤이어 왕위에 오르자 인조가 죽은 지 6일만에 "자점은 아바마마가 승하하실 때 눈물을 흘리지 않고 멀뚱히 있었다. 충성심이 부족할 따름이다."라는 논리로 광양으로 귀양을 보내버린다.


- 이에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 김자점은 효종이 김상헌 등과 함께 북벌을 모의하고 있고, 인조의 능지문에 청나라 연호가 아닌 명나라 연호를 썼다는 사실을 청나라에 몰래 알리면서 효종을 무너뜨리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끝장이 나고 만다.

댓글